공연계 혁명을 불러오는 것일까?     (본 기사는 2022.2월호 월간 한국연극에 기고된 내용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무대 연기에 녹여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만들면서 전통적인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미래 관객을 위해 과연 디지털 기술이 공연 창작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인가?


인텔(Intel)이 참여해7미터짜리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영상을 템페스트(The Tempest,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 투영시키든, 죽은 자들로부터 오페라 디바를 불러오든(Maria Callas, 런던 콜로세움 극장), 아니면 관객들이 3차원 이미지의 세계로 직접 걸어 발을 들여놓든(Draw Me Close, 국립극장) 요즘 공연장은 어떻게든 컴퓨터로 만들어진 다양한 선구적 기술들을 활용해 새로운 방향의 공연 형태를 취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공연계는 관객에게 헤드셋을 착용하게 만들고 컴퓨터로 생성된 세계로 들어가게하는 가상현실부터, 배우가 실시간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통해 디지털 아바타를 제어할 수 있는 모션 캡처, 물리적 환경에 풍경을 투영하는 프로젝션 맵핑 등 소위 몰입형 이머시브 기술(3차원 가상의 이미지를 실제 이용자의 주변에 놓아두는 시스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 하다. 영국에서는 국립극장에서 셰익스피어 극단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공연 단체들이 앞장서서 그 활용 방식을 실험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는 미래의 관객(Audience of the Future)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연구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셰익스피어 극단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 주도해 연극을 포함한 음악, 비디오, 게임 등 각 분야의15개 전문 집단이 참여해 유효한 기술(VR, AR, MR)을 활용. 현존하는 기술들이 공연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실험. 관객들은 자신들의 핸드폰이나 헤드셋, 집에서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더 이상 작품이 갖고있는 장소의 한계를 벗어나고 전에 없는 방식으로 관람.

체험 공연 국립 자연사, 과학 박물관 등이 참여하고 런던의 이머시브 스토리 텔링 스튜디오인 <Factory 42>가 이끄는 관객 경험을 중시하는 작품. 박물관의 오브제와 과학 기술(로봇)을 이용해 관객과의 교류, 소통을 유도해 이머시브 경험을 선사. 영국내 쇼핑센터로 투어링 공연 진행.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E스포츠(ESL, 세계에서 가장 큰 콘텐츠 프로듀서)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방송계와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수백만 e스포츠 팬들과 가상의 공간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방식 소개. -미래 관객 개발 프로그램의 예
(Industrial Strategy Challenge Fund’s Audience of the Future Programme)

앤드류 치티(Andrew Chitty, Audience of the Future정부 프로그램 총괄)

“극장은 지난 수백 년 동안 관객들이 스토리텔링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모든 종류의 기술을 도입해 왔다. 과거 조명, 음향, 무대 효과는 그 시절 기준으로 보면 당시엔 가장 앞선 이머시브 기술이라 말할 수 있다.”

팬데믹 전인 2019년 발표된 <Immersive Economy in the UK Report>에 따르면 영국은 가상(VR), 증강(AR), 혼합(MR), 확장(XR)현실 분야($1600B, 190조원)에선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무대에서 활용되는 기술은 공연 시장에 있어 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미 몇 해전 런던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VR 헤드셋을 쓰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연주를 객석이 아닌 무대 위 지휘자 바로 앞에서 경험했고, 뮤지션들 사이를 빠져나와 밤하늘의 우주 유영까지 체험했던 필자는 헤드셋을 벗고도 몸의 중심을 잡아 실제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데 1분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기억이 있다. 분명 공연이었으나 우리가 알고있는 공연예술이 아니었고 분명 가상이라 알고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않아 실제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혼합 현실의 경험이었다.

Maria Callas en concert – The Hologram Tour

       현재 영국에서 가장 앞서있는 공연 제작사는 바로 런던에 위치한 몰입형 스토리텔링 스튜디오(Immersive Storytelling Studio)를 운영하는 국립극단(NT)이다. VR 헤드셋을 쓰고 극장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객석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작품속으로 들어가 배우가 되기도 한다. 가상 현실이 실제 환경에 맵핑이 되는 이런 무대 기술을 룸 스케일 (room scale VR)이라고 칭하며 모션 캡쳐 의상을 입은 배우가 함께 연기하고 있기에 가능해졌다. 누군가 나를 잡고, 잡은 손에서 체온이 느껴지는 것은 가상의 세계 속에서도 실제 배우가 앞에서 연기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는 이런 기술에 큰 숙제가 있다면 바로 한번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경험하게 만들어 낼 수 있냐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현실(R)” 기술들은 시어터의 경계를 밀어내기는 했으나 상업적 성공이나 발전 모델로 보기엔 이제 겨우 싹을 틔운 정도이다.

       팬데믹 기간 영국에서 있었던 공연 관련 컨퍼런스(Future of Theatre)에 패널로 참석한 국립극장의 디지털 개발 사업 책임자인 토비 코피(Toby Coffey)역시 VR 기술이 라이브 공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스토리텔링의 잠재력이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표현했다. 오히려 팬데믹 기간 갑자기 나타난 “영상 기술의 골드 러쉬 사고방식”이 이 분야의 역량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도 지난 1년을 돌아보면 VR기술을 포함해 영상화까지 공연 분야의 디지털 기술 개입은 엄청난 호황을 맞이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겐 그 개념을 반복적으로 더 널리 알려가면서 시장을 넓혀 가야하는 숙제를 확인한 셈이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작년 한해 기술관련 스타트업이나 언론사 기사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기 시작한 단어가 ‘메타버스’이다. 공연계는 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각종 이름으로 포장된 기금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노력들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고 모든 에너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하지만 메타(구 페이스북) 산하에서 기술 자문을 맡고있는 전설적인 개발자 존 카멕(John Carmack)은 지난해 말 메타버스란, ‘메타버스’를 만들겠다고 처음부터 바로 착수해서 만들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필요한 여러 기반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형성되는 개념에 가깝다는 자신의 생각을 공개한 바 있다. 지금 국내외 공연계(공연 학계 포함)에서 보여지는 메타버스의 연구와 시도는 팬데믹 사태의 대안으로 그저 오프라인 공연이나 행사를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활용하는 수준이며, 게이밍 영상에서 보이는 수준보다 낮고, 철저히 수요자 중심 즉, 관객 중심으로 설계되고 계획된 공연이 아니라 공급 주도적이다. 존은 그렇다고 이런 시도가 무조건 필요하지 않다고 폄하하지는 않았는데, 단기적인 사용자 가치를 가진 것으로는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엔 국내에서도 기술(immersive technologies)과 메타버스(Metaverse)의 활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과연 이런 기술의 사용이 공연 제작과 소비와 향유라는 관점에서 공연 시장에 혁명을 불러오는 것일까?